전라남도 장성군의 내장산 자락에 기대어 백양사는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이 고즈넉한 사찰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산을 감싸 안고 있다. 백양사의 풍경은 계절마다 다른 옷을 갈아입는다. 봄이면 연못가의 나뭇가지마다 연둣빛 새순이 돋아나고, 여름이면 울창한 숲이 짙은 녹음을 드리운다. 가을에는 단풍이 불타오르듯 산사를 물들이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내려 고요한 선경을 펼친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32년, 여환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백암사라 불리었으나, 고려 덕종 3년에 이르러 중연 스님이 중창하며 정토사로 개칭하였고, 다시 조선 선조 7년 환양선사가 백양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면서도 이곳은 불법(佛法)의 향기가 끊이지 않았다. 정갈한 경내에는 스님의 염불 소리가 잔잔히 퍼지고,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바람결에 실려 오는 풍경 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백암산의 품속에 안긴 백양사는 자연과 하나 된 사찰이다. 연못에 비친 기암절벽은 물결 따라 일렁이며 마치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계곡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속세의 번잡함을 씻어내린다. 바위마다 세월의 무게가 쌓이고, 고목들은 오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유난히도 푸르고, 문득 가만히 서서 사찰의 기와지붕을 바라보노라면 세상의 번뇌가 사라지는 듯하다.
백양사의 가을은 더욱 특별하다. 사찰을 감싸는 단풍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붉고 노란 나뭇잎이 바람에 실려 경내를 가득 메운다. 연못 위에 떠 있는 단풍잎 한 장마저도 한 폭의 그림이 되고,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한 줄 시를 읊고 싶은 충동이 인다. 백양사는 단순한 절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며,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고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다.
눈 내리는 날, 백양사는 더욱 고요하다. 사찰을 덮은 하얀 눈은 온 세상을 깨끗이 정화하는 듯하고, 그 적막 속에서도 어딘가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하얀 눈 속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절집과 그 위로 희미하게 퍼지는 풍경 소리는 속세의 번다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한편으로는 장엄하다.
백양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그것은 산과 나무, 바람과 물, 그리고 오랜 시간의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이루어진 조화로운 공간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누구나 잠시나마 일상을 내려놓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고요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천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백양사의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한 조각이며, 결국은 그 흐름 속에서 살아가야 함을.
[사진출처] 백양사 절 떨어지다 - Pixabay의 무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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